2023-04-26

E美지 26호/음악

사랑스러운 첼리스트 김보희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는 모두 눈을 감고 있다. 아기가 눈을 뜨고 보는 첫 사람은 엄마와 아빠일 것이다. 그 순간 부모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새 생명과 마주한다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나 예쁜 신생아가 눈을 떴을 때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안구진탕이라는 질병이었다. 그때 부모의 심정은 ‘엄마가 고쳐 줄게!’라며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치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다. 의사가 아기가 좀 크면 수술을 하자고 치료 방법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로 흔들리는 눈동자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결국 초등학교 때 시각장애 3급 저시력 판정을 받았다.

아기는 아주 예쁘게 무럭무럭 컸다. 많은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라서 장애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학교라는 사회는 어린이일지라도 장애 때문에 상처를 받곤 하였다.


9세 때부터 취미로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다 첼로로 바꾸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슬럼프가 왔다. 그래서 비올라를 하다가 비올라도 좀 아닌 것 같아 고등학교 1학년 때 첼로를 다시 잡았다.

 

 

 

연주자가 되기 위해


악보는 태블릿으로 확대를 해서 보고 암기한다. 솔로곡도 외우고, 앙상블곡도 외운다.

악보를 볼 수 없어서 외운 것인데 꼼꼼히 살펴보고 외워서 곡을 해석하고 난 후 연주를 하기 때문에 연주에 자신감도 있고, 준비를 많이 한 덕분에 잘 한다는 칭찬을 받곤 한다.

보희는 연습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오케스트라 연주는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만의 독특한 방법을 말해 주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지휘자를 보고 하잖아요. 학기마다 수석이 있는데 저는 첼로수석이 하는 제스처 보고 따라해요. 저는 소리에 예민해서 수석의 호흡도 들리니까 제스처를 못 보더라도 호흡으로 따라해요. 다른 악기들 호흡도 다 맞춰서 연주할 수 있어요.”

 

 

일반 콩쿠르에 나가서 수상을 한 경력이 많은데 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차별받지 않았어요. 주최 측은 내가 시각장애인인 줄 모르니까요. 제가 비장애인처럼 보이 려고 노력을 했으니까요. 대신 굉장히 힘들었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는 딱 집중하면 밥안 먹고 10시간 연습해요. 밥이 안 넘어가더라고요.”


그렇게 독하게 연습을 하는 것은 첼로가 좋기 때문일 텐데 첼로를 택하게 된 계기가 있느냐고 묻자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였다.


“계기라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직업이 제한적이잖아요. 안마사, 사회복지사, 특수교사… 정말 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제일 행복했던 일이 뭔가 생각해 보니까 음악이 더라구요. 악기도 이것저것 해 봤는데 첼로의 장중한 울림이 내 심장을 뛰게 해요.”

 

 

남다른 학교 경력


초등학교는 일반학교를 다녔는데 안 보이는 아이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그래서 5~6학년 때부터 홈스쿨링을 했다. 집에서 기초 공부만 하고 첼로만 연주했다.

중학교는 특수학교에 갔는데 특수학교 역시 보희에게는 낯선 동네였다. 그곳에서는 보인다는 것이 어울리지 못하는 조건이 되었다. 중학교 역시 학교교육이 아닌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

 

고등학교는 음악에 대한 전문교육을 실시하는 한빛맹학교로 갔다.

하지만 그때도 음악을 전공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대학에 진학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환 학생으로 미국에 갔다. 2개월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인데 교육에 문제가 생겼다. 보희는 첼로를 배우러 간 것인데 튜터는 바이올린 전공이어서 원하는 교육이 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입시를 코앞에 둔 11월이 되어서야 첼로로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즐거운 대학 생활


그동안은 뭘 해야 하는지, 연주자로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했지만 대학교에 입학을 하니 음악, 연주, 첼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재미있었다.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으로 내년이면 졸업반이다.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서 동창이 없다. 시각장애 친구도 없다.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은 이미 성인이라서 보희에게 잘해 준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제가 시각장애가 있는 걸 이해하고 저를 잘 도와주려고 하니까 되게 편한 것 같아요. 잘 어울리긴 해도 놀러다니는 것은 좀… 저는 깜깜한 데 가면 앞이 전혀안 보이기 때문에 식사 자리에는 가도, 술자리에는 안 가거든요. 술도 싫어하구요.”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있어요. 올 축제 때 만났어요. 오빠가 저희 학교 축제에 놀러 왔다가 만났어요. 내가 시각장애가 있다고 말을 했는데도 그게 뭐 문제냐, 상관없다는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대해 줬어요.
자기가 잘 챙겨 주겠다고 했죠. 정말 티나지 않게 나를 도와줘요. 마음이 깊어서 좋아요. 요즘은 거의 매일 만나요.”


보희는 등하교가 힘들어 기숙사에서 지낸다. 학교생활은 아주 편하다. 장애학생 도우미제도가 있어서 도움을 받고 있다. 현재 플릇 전공 선배가 그녀를 돕고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여서 배울 점이 많아요. 그 언니도 내 수업을 지원해 주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고 좋아해요. 교수님들이 저를 엄청 예뻐해 주세요. 특히 저희 담당 교수님이 저를 위해 많이 신경써 주세요. 친구들이 질투할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것도 즐겁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좋아한다.

EBS 토크쇼 <세상을 비집고>에 출연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데 피드백이 좋아서 방송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저는 제 음악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면 해요. 세상에는 많은 연주자들이 있지만 연주자가 어떤 상황에서 그 곡을 표현해 내느냐는 다 다르잖아요. 희망이 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보희네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네 자매가 있다. 그녀가 맏딸이다. 동생들이 많이 도와준다. 네 자매가 뭉치면 못할 것이 없다.

아빠는 국가대표 수구(물속에서 하는 배구) 선수였지만 다른 식구들은 예체능에 별 관심이 없다.

 

그녀는 요즘도 1년에 한 번씩 안과 검진을 받는다. 수술로 교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의사 선생님은 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쉬라고 하지만 김보희는 악보를 봐야 연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 말을 안 듣게 된다.

앞으로 일을 걱정하느라고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녀를 어둠에 갇히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