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2

시가 웹툰을 만났을 때

바리데기 언니

 

글_김미선,  그림_연두

 

 

 

바리데기 언니

 

김미선

 

 

옛날 옛날 

간난이 상고머리 계집애

두어 살 더 먹은 언니

두 살 더 아래 동생을 업고

길을 나섰다

 

역전 마라보시* 삼거리를 지나

먼실 안골로 가는 길

용케 차라도 지나갈 테면

뽀얀 먼지 앞을 가리던 자갈밭 신작로

 

큰 계집애가 작은 계집애

엉덩이 치킬 때마다

빨간 갑사치마 위로 말리고

엉덩이는 아래로 빠져

 

세 번 네 번 치키다 숨이 차올라

미루나무 둥치에 기대

목에 매달린 동생을 내렸다

아침에 곱게 맨 저고리 고름이 풀리고

연분홍 리본도 먼지에 더러워졌다

 

큰 계집애 중년 아낙네처럼

허리를 쭈욱 펴고

고사리 손이 아낙네 손바닥인 양

작은 계집애 이마를 쓰윽 훔쳐 주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구름이 뭉게뭉게

멀리서 딸딸이 용달차 

먼지기둥을 달고 탈탈탈

 

오늘은 막내이모 혼례식

키 큰 이모는

키 크다고 타박 받아

팔십 리 노총각한테 겨우 시집가는 날

 

외갓집 마당에는 차일이 올라가고

초례상 양쪽엔 푸른 대나무

청홍 목기러기 사이에 두고

팔십 리 노총각 사모관대 차리고 

안골 노처녀 연지 곤지 찍는 날

 

패랭이꽃 핀 고샅길

기름 냄새 고소하고

차일 자락도 외삼촌 두루마기 자락도

펄렁펄렁 춤추는 날

 

잔치 소식 신명 올라

큰 계집애 동생 치마저고리 입히고

꽃분홍 머리에 꽂고

엄마 아부지보다 먼저 나선 길

 

번데기공장 엄마는

공원(工員)들 밥 준비에

동동걸음 치는데 

얼굴이 까만 계집애

동생을 치켜 업고 길을 떠났다

 

네댓 살 되도록

걷기는커녕 

일어서지도 못하는 동생을 업는 일이야

동네 숨바꼭질보다 더 흔한 일

갑사 치마저고리 곱게 입힌 동생을 업고

예닐곱 살 언니가 길 위에 올라섰다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쉬다가 또 가고

전라도 황톳길 걸어 걸어 가다가

발가락 하나 빠지고 또 빠지던 문둥이 시인 한하운처럼

 

두 살 더 먹은 계집애가

두 살 더 어린 계집아이를 업고

몇 걸음 걷다가 궁뎅이 쑥 빠지고

몇 걸음 걷다 궁뎅이 아래로 빠지는 동생을 업고

 

외갓집 이모 혼례식에 가는 길

자갈밭 신작로 먼지 풀풀 날리고

미루나무 꼭대기엔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올랐다

* 마루보시 (丸星) : 대한통운의 일제 때 이름

 


김미선_여, 지체장애

시인, 소설가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2018 구상솟대문학상
2013 문체부 우수문학도서 선정 소설집 '눈이 내리네' 
1994 동서문학 신인상(소설)

 

시집

너도꽃나무(2019)

 

소설집 
눈이 내리네(2012)
버스드라이버(2013)

 

수필집
이 여자가 사는 세상(2005)

 

동화집 
유일한에게 배우는 나눔(2008)

 

공저 
젊은작가 신작소설 모음, 소수자들의 삶과 문학 등

 

발표 
솟대평론, 푸른사상, 창작과 비평, 문학사상, 문예중앙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