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6

E美지 27호/대중예술

연출자 임지윤의 반전 매력

 

장애인예술 분야에서 전문 연출가를 찾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연출은 물론이고 기획과 연기 그리고 시나리오까지 집필할 수 있는 인재인 임지윤을 만나면 재주만큼이나 수줍은 당당함으로 장착된 아주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30세가 된 임지윤은 30년 동안의 삶이 너무나 버라이어티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모두가 다르게 태어난다


임지윤의 가족은 부모님과 오빠 2명, 언니 1명이 있다. 막내여서 부모님과 형제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키가 작고, 두 팔이 짧으면서 두 손목이 90도로 꺾여 있고 엄지손가락이 없었지만 그것이 장애로 느껴질 만큼 불편하지 않았다. 그녀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선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택한 것은 그녀가 공연에 관심이 많았고 공연 연출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예종에 장애인이 입학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녀는 운 좋게 2013년에 합격하였다.
집이 대구여서 서울로 유학을 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셨다.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막내딸을 데리고 살고 싶어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반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대학생이 되었으니 손 수술을 받자고 하셨다. 보통 여자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예뻐지려고 성형수술을 하는데 임지윤은 굽어진 손을 성형하였다. 굽어진 것을 펴고 둘째 손가락을 떼어서 엄지손가락을 만들었다. 임지윤은 눈에는 손이 엄청 멋있어졌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장애였다.

 

 

 

한예종 학생으로


기숙사에서 살면서 한예종 연극원 연극학과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다. 연극 기획에 대해 공부하다가 부전공으로 연출 공부를 하였다. 연극원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자기 분야에서 성취감을 찾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녀는 공연이 너무 좋아서 한 학기에 한 번만 하면 되는 공연을 두세 번씩 기회가 될 때마다 하면서 능력을 키웠다.
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주제를 생각하다가 장애를 떠올리게 되었다.
장애는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장애 관람객을 위한 배리어프리 공연에 관한 연구-연극·뮤지컬 공연을 중심으로’를 202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과정 논문으로 제출하고 졸업을 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대구에 내려가지 않고 자취를 하며 연출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때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실시하는 장애인문화예술지원공모사업에 응모하여 21년과 22년에 자신이 기획한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연극인으로


지난 2021년 <임지윤의 하루>로 관객을 만났던 임지윤이 <임지윤의 하루 2>로 돌아왔다.
DJ유니의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의 하루’ 게스트로 초대된 임지윤은 장애· 입양·여성·퀴어의 당사자성을 중심 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임지윤의 하루> 시리즈는 연극이란 허구의 이야기를 배우의 연기로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배우가 어떤 인물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무대에 선다.

다시 말해 임지윤이라는 현실의 인물이 곧 <임지윤의 하루>의 배우이자 연출자이고, 작가이다.


무대는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처럼 꾸며져 있다. 실제 라디오 방송처럼 공연도 진행자와 게스트가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된다. 물론 진행자인 유니와 게스트인 임지윤 모두 임지윤이 맡는다.

게스트 임지윤은 현장에서 직접 말하고, 진행자인 유니는 모니터 속 아바타로 등장해 미리 녹음된 대사를 하는 방식이다.

임지윤이라는 사람이 1시간 동안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결혼에 대한 질문을 하는 진행자에게 연인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결혼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하고, 입양 사실을 알게 된 어느 밤을 이야기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비장하거나 숨겨 왔던 사실을 고심 끝에 털어놓는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가 가진 소수자성은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임지윤은 짧은 무용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축구공으로 트래핑을 해 보이며 특유의 덤덤하면서도 밝은 목소리와 스스럼없는 태도로 공연을 능숙하게 이끌어 간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는 까닭은 ‘편안한 관람을 위한 공연(Relaxed performance)을 지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여러 사람이 편안한 환경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고안된 개념으로, 관객석이 완전한 암전이 아닌 상태에서 공연이 진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공연 중 입장과 퇴장도 자유롭다. 관객들이 작은 소리와 몸짓도 조심하며 오로지 무대에만 집중하는 기존의 공연에 익숙하다면 낯선 풍경일 수 있다. 덕분에 무대와 관객석 사이 위계는 해체되고, 관객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임지윤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


명절 때나 부모님 생신 때 대구에 내려가면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신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면 자주 내려와야지 하면서 무슨 일이 그리 많은지 가끔씩 거르곤 했던 것을 후회하곤 하던 5년 전 어느 날 아버지와 밤이 깊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술이 약간 취하셔서 어렵게 아주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이제는 너도 아는 게 안 낫겠나.”

 

아버지는 지윤이 생후 8개월에 입양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이가 드시니까 자식의 뿌리는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셨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지윤은 딛고 선 땅이 뒤흔들 리는 듯한 충격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식구들과 닮았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고, 부모 형제의 사랑이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에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했고, 한없이 울기만 하는 엄마에게는 ‘나 괜찮아. 그게 뭐….’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엄마를 위로해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엄마한테 물어 보았다.

 

“엄마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왜 데려왔어?”

“자꾸 눈에 밟혀서 자꾸….”

 

엄마는 가톨릭 신자로 봉사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버려진 장애아들의 보육시설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두 팔의 장애뿐만이 아니라 건강 상태도 안 좋았지만 아기가 살겠다고 가쁜 숨을 쉬며 우유를 열심히 먹는 모습이 집에 와서도 자꾸 떠올라서 다음 날 일찍 보육원에 가곤 했다.


생모라는 존재는 그녀를 뒤흔들어 놓았다. ‘생모는 왜 나를 버렸을까?’ 그것이 정말 궁금했다. 나쁜 상상은 더 나쁜 상상을 생산했다. 아플지언정 진실을 직접 마주하고 싶었다.

친부모가 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덮어둘 수 없기에 생모를 찾아나섰다. 대구 부모님 모르게 혼자서 보육원 이름 하나만 들고 25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탐색해 갔다. 긴 수소문과 시행착오를 거쳐 대구에 있는 생모 친정 식구들과 접촉이 되었다. 생모는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생모에게 연락을 했다. 반응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생모는 21 년 10월에 그녀에게 전화를 주었다. 살아 있었냐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 후 메신저로 연락을 계속하다가 생모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22년 9월 4일 한국으로 왔다.

생모를 만난다는 기쁨보다는 복잡한 마음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것은 지금의 부모님이었다. 생모를 찾는 딸이 애틋하기도 하고 생모를 찾고 싶어하는 딸에게 서운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혈육을 만난 딸을 기쁜 마음으로 축복해 주었다.
한국에 온 생모는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형제들이 살고 있는 대구에 있는 동안 지윤도 대구에서 생모와 이모, 외삼촌들을 만났다. 어색함보다는 진실과 직면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간의 사연은 이러했다.
결혼을 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첫째를 낳았을 때 산후 뒷바라지를 해 줄 사람이 없어서 고생을 했었기에 두 번째 아이는 친정집에서 해산을 하려고 한국에 와서 해산을 했다. 아기가 호흡기 질환으로 생존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친정 식구들이 나서서 아기를 포기했던 것이다.

출산 후 너무 힘든 탓인지 생모는 2년 정도 기억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해 아직 숙제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2023년 1월 생모의 초대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 떠나기 전 엄마가 약간 불안해하셨다. 그래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초대해 주니까 가는 거야. 아직 할 얘기가 남아 있어서… 영영 떠나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녀는 키워 주신 부모님이 좋고, 연극이 좋고, 그래서 우리나라가 좋다.
미국에 가서 세 살 위인 언니도 보았다.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응어리진 마음이 조금 풀어지기는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윤은 생모를 찾았을 때 키워 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더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입양하여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키워 준 부모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KBS-TV 인간극장 <지윤 씨의 두 어머니>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것이 키워 주신 부모님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다들 다르게 태어났잖아요. 각자 삶의 방식이 있는 거고. 저만의 방식을 너무 다르게 안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저만의 매력을 아시니까 저는 그런 매력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해요. 서로의 얘기를 나누면서 편안해지는 것이 저는 좋아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물으니 아주 예술적으로 답변했다.

 

“제가 공연을 하면 그게 장애인예술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장애예술인인 것도 맞지만 그냥 예술인도 맞기 때문에 모두가 만날 수 있는 그런 예술을 하고 싶습니다.”

 

 

 

임지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 전공, 연출과 부전공 졸업
현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유튜브

2022 잇다 <장애에 대한 시선> 인터뷰

2022 서울퀴어페레이드 <퀴어예술가> 인터뷰

2021 낭독 뮤지컬 <라스 올라스> 오디오북 Hear, See: 인터뷰어ver. 출연

2021 이음온라인 <예술이 뭐라GO> 출연

2021 <같이 잇는 가치> ‘잇터뷰’ 임지윤 연출편 출연

2021 <웹진연극in_200호> ‘렛미인트로듀스’ 임지윤 출연

2020~현재 채널 <유니의 시간> 운영 중


공연

2022 <임지윤의 하루 2> 작연출 및 출연

2022 <여기, 한때, 가가> 출연

2022 A+페스티벌 <그 집 모자의 기도> 출연

2021 아시아연출가전 <여기, 한때, 가가> 출연

2021 <임지윤의 하루> 작연출 및 출연

2021 제4회 페미니즘연극제 <여기, 한때, 가가>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