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4

캠페인(campaign)

시야, 노올자!

 

제34회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작

 ‘데드라인(Deadline)’의 해학

기고/방귀희

 

라스코 AI로 생성한 이미지 ©방귀희


 

제34회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자 김묘재 시인은 본명이 윤정희(여, 지체장애, 61)이다.

필명으로 심사를 보았기 때문에 언어의 섬세함이 여자 같기도 하고, 파격적인 단어 사용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었다.

 

선정 후 약력을 보니 경력이 너무나 다양하여 다시 한번 놀랐다.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졸업 후 대학원에서 영문학 전공 그리고 심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장애인의상연구소 디자인실장으로 근무하며 다수의 장애인패션쇼를 기획하여 개최하였다. 더욱 엉뚱한 경력은 휠체어댄스 스포츠 선수 활동을 했고, 현재도 장애인역도 부산대표로 전국장애인체전에서 수차례 메달을 딴 역도선수라는 것이다.

 

문학 경력으로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2016년 동화, 2022년 수필 입선이 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인데 단숨에 구상솟대문학상을 거머쥔 실력자이다.

 

‘장애는 세상을 새롭게 그려낼 수 있는 자산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이 닿을 수 있는 글이 되기까지 먼길을 걸어갈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라는 단단한 각오에서 그녀가 얼마나 문학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데드라인(Deadline)

김묘재

 

고장난 나를 고쳐주세요

수리수리 마하수리

 

손사래보다 먼저

설레발친 사고뭉치

 

엉킨 타래를 풀지 못해

굴러다니는 뭉태기를 엮지 못해

 

말로 쏜 화살, 글로 쓴 죄

돌고 돌아 택배상자에 꽂힙니다

키요틴이 배달되었군요

 

어려서 부모님을 잃구요

언니와 계모에게 받은 구박*은

아무도 읽지 않을 클리셰

 

달콤한 무리, 무리들과

쌉쌀하게 사바 사바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는데요

 

혼자서는

무리 무리 아무리

필사해도 피는 돌지않습니다

사바 사바 분신 사바**

 

칼춤 추며 달려오는 망나니

아침 이슬로 사라지고 싶지 않아

깨진 유리구두를 꼭 쥐어보지만

맨몸만 넘을 수 있는 선

 

마무리가 무리 무리

죽음도 연습이 필요해

수수리 사바하

 

*1980,90년대 어린 여자 아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노래

**1980,90년대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했던 놀이의 일종. 초자연적인 존재를 불러 소원을 들어달라는 의식

 

 

수상작 ‘데드라인(Deadline)’은 마감시간을 뜻하는 용어로 시인은 인생의 절박한 순간들을 유쾌하게 풀어놓았다.

 

세 살때 소아마비로 지체장애(1급)가 생긴 것을 몸이 고장난 것에 은유하여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주문을 외우지만 사고뭉치로 얽힌 실타래를 풀지 못한다.

말로, 글로 지은 죄가 많아서 시인한테 온 택배 상자 속에는 프랑스 혁명에 사용되던 키요틴 즉, 사람의 목을 자동으로 자르는 사형기계가 들어 있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불쌍한 모드로 전환하는 뻔한 클리셰는 통하지 않는다. 칼춤을 추며 망나니가 다가온다.

데드라인이 카운트를 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번에는 신데렐라를 꿈꾸지만 손에는 깨진 유리구두를 쥐고 있다. 신데렐라 꿈도 여지없이 박살난 것이다.

 

인생의 데드라인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맨몸으로 건너야 한다.

시인은 죽음도 연습을 해야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 것이라며 다시 주문을 외운다.

 

김묘재 시인은 무겁고 무서운 주제인 죽음을 유머로 재미있게 설명한다.

키요틴, 망나니 칼춤 등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계속 수리수리 마하수리를 중얼거리며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소망을 버리지 못하는 그녀는 유머를 잃지 않는 긍정적인 자세로 독자들에게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

 

시인은 확실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엄청나게 많아서 앞으로 무궁무진한 시어(詩語)를 술술 뽑아낼 수 있는 언어의 마술사이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