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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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 노올자!
기고/방귀희
bing AI로 생성한 이미지. ©방귀희
릴케의 시 ‘소녀의 기도’를 비롯해서 동서양의 많은 문인들이 기도문 형식의 시를 발표하였지만 김준엽 시인의 시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처럼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자기 반성으로 서약(誓約)을 하는 대서사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시는 지역적, 시대적 그리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새겨볼 만한 아름다운 반성문이다.
김시인은 나이가 들어서 황혼기를 맞이했을 때 인생을 돌아보며 자기에게 무엇을 했느냐 물어보고, 그때 대답이 궁색하지 않도록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형식으로 시를 지었는데 총 7연이라 하나씩 끊어서 살펴본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김준엽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가족들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고, 더군다나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시인은 지금 당장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겠다고 약속한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자신 있게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겠습니다
열심히 살았는지 생각해보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든 일이든 운동이든 취미 활동이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당시는 왜 그랬는지 의미가 없고, 나중에 해도 된다며 미뤄놓기 일쑤였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동안은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는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반성한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어 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겠습니다
내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었을 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기쁨이 되는 일들을 하기 위해 여행도 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도 하며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겠다고 계획한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가족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반갑게 대답하기 위해
내 할 일을 다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겠습니다
시인의 장애로 가장 마음 아팠을 가족들에게 후회가 남지 않도록 가족들을 사랑하고 특히 부모님께 순종하겠다고 결심한다. 왜냐하면 가족은 운명 공동체여서 모든 고통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나에게 많은 날들을 지내오면서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힘주어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이웃에 관심을 가지고 선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시인은 가족을 넘어 사회와 국가를 위해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가도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게 너무 냉혹하고 국가가 장애인을 위해 해준 것이 너무 없다고 불만스러워했지만 그래도 한 사회 구성원이고 국가의 국민이기에 이웃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선한 사회인이 되겠다고 맹세한다.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나는 내 마음의 밭에서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어보겠지요
그러면 그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마음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김준엽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시 부문 입상(1996)
2014년 구상솟대문학상 최우수상 등
시집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마음의 눈으로>, <희망이 햇살이 되어> 등 다수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자기 인생의 결실을 측정해본다. 비록 남들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하여도 시인은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행동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히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성숙시키겠다고 서원(誓願)하였다.
이 시는 『솟대문학』 100호(2015년 12월)에 실렸다.
김준엽 시인은 중증의 뇌성마비로 언어장애가 있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사이버문단에 시를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했는데 1995년 한 출판사에서 시집을 발간해준다고 하여 100여 편의 시를 보냈지만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작품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런데 1995년 월간 『좋은 생각』 9월호 권두시에 정*철 이름으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으로 게재되었다.
표절된 것이다. 작가는 표절 사실을 2014년에 알고 『솟대문학』 에 전해왔는데 김준엽 작품으로 활자화된 증거가 없어서 바로잡지 못하였다.
그 후 이 시는 저자가 윤동주 또는 작가미상으로 지금도 사이버 세상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 시는 표절을 할 만큼 좋은 시이다.
앞으로 더욱 착하게 열심히 살겠다는 약속문으로 독자들에게 그야말로 선한 영향을 주고 있어서 가까이 두고 애송했으면 한다.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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