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3
E美지 36호/문학
나의 영광 문학, 시인 신계원
신계원은 1962년 경남 밀양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2남5녀 중 넷째인 그녀는 산과 들을 마당삼아 뛰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정보화시대로 들어설 때, 23세 신계원은 29세인 남편을 만나 1984년 결혼과 동시에 컴퓨터학원을 차렸다.
남편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였고 다행히 합격하여 대가족이 서울로 이주를 했다.
새 보금자리에는 시부모님과 두 아들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나들었다.
1996년 아침, 그녀는 조리사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실기실습을 위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러나 소리도 없이 찾아온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 경추 5번 손상 전신마비라는 충격적인 장애 판정을 받고 말았다.
그녀는 겨우 35세인데 평생을 걸을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원망스러웠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믿기지도 않았다.
나를 죽이기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병원생활 2년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예전의 자신은 찾아볼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에 휠체어 몸을 어디에 둘지 몰라 시계추마냥 왔다 갔다 했다.
그사이 큰아들이 군입대를 했고, 얼마 뒤 딸의 불행에 가슴앓이하던 친정엄마와 친정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다.
그녀는 죄책감과 상실감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남편의 변함없는 헌신과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죽이고 있었다.
시인이 되다
그녀는 손에 보조기구를 끼고 컴퓨터 사용 연습에 돌입했다.
꼼짝 않는 마우스를 잡고 또 잡았다. 입술이 부르트고 입안이 해지도록 연습에 연습을 반복한 끝에 두 달 만에 마우스를 움직이는데 성공하였다.
더디고 더디지만 자판을 하나하나 두드리며 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들의 군복무기간 동안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문학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
아픔과 슬픔을 누에고치처럼 풀어내 희망의 글로 탈바꿈시키며 승화해 나갔다.
그리고 편지쓰기, 백일장, 여러 공모전에 응모해 열매를 맺으며 내면을 성장시켰다.
영광, 나의 어워즈
신계원은 어느덧 63세이다.
35세에 사고가 났기에 장애를 갖고 살아온 날도 그만큼 길다.
지난해 첫 시집 <영광, 나의 어워즈>를 발간하였다.
신계원은 글이 자신을 살린 의사요, 약이라고 할 정도로 문학을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첫 시집의 해설을 쓴 백인덕 시인은 ‘공감하는 능력과 구원에의 열정이라는 두 측면에서 조화롭게 병행하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고 그녀 시작품들을 평하였다.
‘일흔다섯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어느 여배우가 “인생은 버티는 것, 묵묵히 버티니 빛나는 순간이 찾아왔다”고 한 것처럼 장애나이 삼십이 되기까지 버티고 견뎌낸 그 고뇌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신계원 시인의 소망은 가장 즐거운 시절을 보냈던 초등학교 모교에 자신의 시화가 펄럭이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