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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예술 소식을 정기적으로 전해드립니다.
2025-10-31
E美지 37호/문학2
2025년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자 고명숙
구상솟대문학상
구상솟대문학상은 故 구상 시인께서 소천하시기 전인 2004년 솟대문학상 발전 기금으로 2억 원을 기탁함에 따라 2005년부터 구상솟대문학상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해 후원을 받아 올해부터 상금이 3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증액되었다. 부상으로 도서출판 연인M&B 후원으로 개인 시집을 출판해 주고 있다.
_심사위원: 김재홍(가톨릭대학교), 맹문재(안양대학교), 이승하(중앙대학교)
2025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자 서성윤, 고명숙
경험시로 세상을 향해 외치다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석창우 대표)에서 2025 구상솟대문학상과 이원형어워드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제35회 구상솟대문학상 서성윤(남, 44세, 전신마비), 고명숙(여, 51세, 뇌병변장애) 시인이 선정되었다.
2025 구상솟대문학상은 상금이 500만 원으로 확대되어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당선작 선정을 위한 심사위원들의 토론도 뜨거웠다.
2025 구상솟대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당선작으로 서성윤의 <동네에서 같이 살기>와 고명숙의 <운명의 기도>를 선정했다.
심사위원들은 강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두 시인의 작품들 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하기보다는 두 편을 모두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것이 문학상의 취지를 풍성하게 살린다고 판단하여 공동수상으로 결정하였다.
서성윤 시인은 20세 때 뺑소니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상태에서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글을 쓰고 있다.
2006년 사고로 중단한 대학 공부를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에서 마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2025 구상솟대문학상심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맹문재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당선작인 <동네에서 같이 살기>는 ‘사마귀조차 귀한 인연으로 여기고 “동네에서 같이 살”려고 하는 대상애(對象愛)를 보여 주
고 있다. 점점 이기적 개인주의에 함몰되어 공동체의 가치가 무너 지는 현대사회의 상황에서 작품의 주제 의식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였다.
서성윤 시인은 수상 소감으로 ‘2010년 졸업 당시, 필력을 쌓아 언젠가는 솟대문학상을 받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비록 1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처럼 오래도록 품었던 각오를 현실로 만들게 되어 더없이 영광
스럽고 감격스럽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또 한 명의 당선자 고명숙 시인은 '중증의 뇌성마비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직업전문학교 시절인 1999년에 『솟대문학』에 시를 보내 한 번 실린 적이 있다. 그 후 일상에서 경험 하고 느끼고 고민하는 것들을
조심조심 꺼내어 시를 썼다.'고.
당선작 <운명의 기도>는 ‘갑인(甲寅) 생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의 의미를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으로 인식한 점이 눈길을 끈다.’고 맹문재 교수는 심사평을 하였다.
고명숙 시인은 수상 소식을 알리자 ‘이 큰 영광이 주어진 데 대해 스스로 그 타당성을 부여하 기가 여간 조심스럽고 낯설고 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솟대처럼 하늘을 향해 묵묵히 글을 쓰는 시인으로 노력하겠다.’고 다
짐하였다.
2025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작
운명의 기도
고명숙
무려
갑인생이다
그래서인지 고맙게도
잘 살았다
잘 살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갑목도 우리나라요
인목도 우리나라다
곧게 우뚝 선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이만하면
잘 나고 잘 자랐다
그러니 행여 배은망덕 말라고
내 생애에도 이렇게 버젓이 펼쳐지는
이 매국의 사태들에 위태롭다
잠 못 이루는 날들을 맞이하였나
온전치도 자유롭지도 못한 이 작은 목숨에
때마침 들어서는 계해의 굵은 물줄기야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이 마른 근간을
부디 생명수로 적셔다오
천지로써 천지를 기도한다
내가 뭐라고
아니 내가 뭐라고
아니 외려 나라서
이토록 간절할 수밖에 없구나
* 갑목(甲木)과 인목(寅木)은 1974년 갑인년생인 시인 자신을 가르킨다.
** 계해는 60간지의 마지막으로 끝인 동시에 시작을 의미한다.

2025 구상솟대문학상 심사평
대상애 (對象愛) 와 운명애 (運命愛) 의 공동체 가치 돋보여
심사위원장 맹문재(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25 구상솟대문학상 당선작으로 서성윤의 <동네에서 같이 살기>와 고명숙의 <운명의 기도>를 선정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강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두 시인의 작품들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하기보다는 두 편을 모두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것이 문학상의 취지를 풍성하게 살린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성윤의 작품들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구체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탄탄한 구성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당선작인 <동네에서 같이 살기>는 사마귀조차 귀한 인연으로 여기고 “동네에서 같이 살”려고 하는 대상애(對象愛)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점점 이기적 개인주의에 함몰되어 공동체의 가치가 무너지는 현대사회의 상황에서 작품의 주제 의식은 의미가 큽니다.
<생일 축하합니다>에서 보여 주는 가족 사랑 역시 큰 울림을 줍니다.
자기 긍정을 토대로 이 세계와 함께하려는 시인의 자세는 성숙한 인간 정신의 실천이기에 적극 응원합니다.
고명숙의 <운명의 기도>는 갑인(甲寅)생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의 의미를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으로 인식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작품의 화자는 “곧게 우뚝 선/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이만하면” “잘 살았다”고 말하면서, “매국의 사태들에 위태”로움을 느끼고 “잠 못 이루는 날들”에 맞서고 있습니다.
어려운 나라의 상황이 극복되어 잘 살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생사의 처지나 미래의 존망에 대한 화자의 간절한 기도는 자신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시인의 공동체적 운명애(運命愛)는 지극히 숭엄하기에 기꺼이 동참합니다.
2025 구상솟대문학상 수상 소감
시쓰기는 세상의 모든 것에 귀 기울이는 일
-시를 짓는 마음과 언어로 삶을 어루만지고 햇살 한 줄기 닿게 하기를
고명숙(2025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자)
기쁜 일, 좋은 소식은 백 년 만에 찾아온 더위와 상관 없이 오나 봅니다.
구상솟대문학상 공동수상 소식은 놀람으로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이 큰 영광이 주어진 데대해 스스로 그 타당성을 부여하기가 여간 조심스럽고 낯설고 쑥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에 담긴 따뜻함을 읽어 주시고, 그 안에서 세상과 삶에 대한 마음과 의지를 발견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늘 말없이 응원해 주시는 가족과 벗들, 그리고 제 시가 자신 외에도 그 누구에게든 다가가 또다시 가슴에 닿길 바라며 읽어 주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수상의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소식을 듣는 내내 글 쓰는 일을 늘 살펴 주신 최명숙 시인님께로 소식을 얼른 전해 드리고 싶은 한편, 제가 상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또다시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는 세상의 모든 것에 귀 기울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혼자 걷는 길 같지만, 결코 혼자인 적이 없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시를 짓는 마음과 시의 언어로 삶을 어루만지고, 아픈 자리, 기쁜 자리, 어느 자리든 햇살 한 줄기 닿게 하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솟대처럼 하늘을 향해 묵묵히 글을 쓰는 시인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자2
고행을 하듯 시를 쓰는 고명숙

명숙은 1974년 5월 8일 충남 아산에서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한 달 빨리 태어나서인지 산통이 심했다.
아기는 힘차게 울지 못하고 젖도 빨지 못해 엄마가 숟가락에 젖을 받아 아기 입에 떠먹여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기가 몸을 가누지 못하였고 생후 6개월경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뇌성마비 유형 가운데 무정위운동형으로 목적 없는 움직임 때문에 힘을 많이 쓰게 된다.
시력도 워낙 나빠서 시각장애도 있다. 목을 잘 지탱하지 못하고 머리가 흔들리니까 약한 시력이 더 나빠지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머리와 팔다리에만 종종 통증이 있었는데 10대 후반부터는 척추신경과 근골격계 통증마저 생기더니 나이가 들수록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장애에 통증을 덤으로 끌어안고 살고 있다.
11세에 특수학교 입학

명숙은 1979년 여섯 살 때 삼육재활원에 입소하였다.
그때 어머니와의 분리불안으로 엄마를 찾으며 계속 울어서 며칠 후 다시 집으로 갔다.
명숙에게 온전히 신경을 써 줄 수 없는 형편이라 학교에 갈 시기를 놓치고, 열 살이 넘도록 그냥 집에만 있었다.
열한 살이 되어서야 치료든 공부든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는 결심으로 1984년 봄바람 불기 전인 3월에 연세재활학교에 입학하였다.
입학 초기엔 삼육재활원에서처럼 불안증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적응이 되어 어느새 집에 있는 것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선생님들께 사랑받고 친구들과 놀면서 밝은 천성이 드러났다.
5, 6학년 때는 창작 욕구로 일기장에 동시를 쓰곤 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명숙이가 시를 썼다고 칭찬을 해 주시며 기왕이면 그림도 그려 넣어 시화집을 만들어 보라고 하셔서 더 열심히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1987년 5월 1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이 전국 특수학교 학생들의 글로 문집을 내는데 명숙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글을 써 보라고 하셔서 ‘그리운 아빠’라는 제목의 동시를 지었
다. 아버지를 잃은 마음을 동시로 담아 보도록 이끌어 주신 유복희 선생님은 장애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신 훌륭한 스승이다.
일반 학교로 진학하다

초등학교 6학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졸업에 대한 기쁨보다는 중학교를 어디로 가야 하나 걱정하며 특수학교를 쭉 떠올렸다.
최악은 그냥 집에 있는 것이었다. 명숙에게 그 상황은 끔찍했다.
그러면서 선배들 중 일반 학교에 간 졸업생들을 떠올려 보았다. 참 멋진 모습이었다.
학교에서는 일반 학교로 진학하기를 권했다. 그래야 사회 통합이 이루어진다는 논리였다.
선생님과 상담한 엄마는 명숙을 일반 학교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명숙이 갈 수 있는 일반 학교를 고르다가 풍문여고로 정했다.
일반 학교로의 진학은 엄청난 도전이었기에 각오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등하교 방법, 교문을 들어섰다 해도 학교 안에서의 물리적인 환경, 그리고 교우관계, 신변처리, 식사 등 어느 것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학습 참여, 숙제, 시험 등 늘 신세만 지는 학교생활이었지만 간혹 시 한 편 지어서 내라는 과제에서는 명숙의 시가 선택될 정도로 시짓기는 자신 있는 분야였다.
풍문여고로의 진학은 친구들의 뺑뺑이와는 달리 명숙에게는 권리로 주어졌다.
연합고사는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수도여고 양호실에서 혼자 보았다.
“마음이 여리셔서 저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신 적도 있어요.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가끔 절 보러 와 주시며 친구들에게 명숙이 잘 도와주라고 나즈막히 부탁하시며 마음 주신 이성숙 선생님, 그 깊은 은혜를 더 깨닫습니다.”
법대생이 되다

1996년 강남대학교에 입학했다.
EBS교재를 사서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법을 배우고 싶어서 법학과를 택했지만 공부가 몹시 어려웠다.
대학교 생활은 중고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덩그러니 혼자 됨과 다음 수업으로의 이동이 고통이었다.
교수님들의 이해와 친구들 선후배들의 도움은 고맙게 대학교에서도 이어졌다.
특히 특수교육학과인 같은 96학번인 박경일 오빠는 헌신적으로 명숙을 도와주었다. 지금까지도 글쓰기의 길을 열어 주고 세상과 소통하게 도와준다.
어느 날 학교에서 오빠에게 시 한 편을 보여 준 적이 있었는데 참 좋은 시라고 격려해 주어 시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며 돈을 벌어 사람답게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1999년 삼육직업전문학교 정보처리과에서 10개월간 컴퓨터를 배웠다.
잘 따라가지 못해 답답했지만 시험을 통해 워드 3급과 정보운용기기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워드와 인터넷을 배운 후 시를 올릴 수 있는 사이트에 시를 올리게 되었는데 누군가 『솟대문학』에 등단제도가 있으니 작품을 보내 보라고 하였다.
그 전에 한번 보내 봤지만 실리지 못했었는데, 다시 도전해 보는 의미로 <고행>이란 시를 투고하여 드디어 1회 추천을 받았다.
2001년도 대학 졸업 후 잠깐잠깐 일을 한 적이 있었지만 금방금방 잘렸다.
명숙은 장애인복지로 눈을 돌렸다. 정립회관에서 자립생활을 배우고 동료상담에 참여한 후 1년 연수생으로 있으면서 장애인운동에 참여했다.
몇몇 장애인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로 일했다.
그러나 항상 자신이 행복하게 할 만한 일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문학 공부의 스승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한국장애인문학협회 최현숙 회장은 고명숙을 만나자마자 그녀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서 회원 분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모여 시를 짓고 고치고, 동화를 쓰고 고치면서 완성한 작품으로 공동 시집과 동화집을 냈다.
최현숙 회장은 건강 악화로 현재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최명숙 회장이 운영하는 장애불자단체 ‘보리수아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참여는 2017년부터 했다.
모임 초대를 받아 처음 참여했을 때 최명숙 회장은 명숙이란 이름이 같다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명숙이 글을 포기하지 않도록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항상 속뜻도 헤아려 주는 최명숙 회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고명숙 시들을 모아 첫 개인 시집도 발간해 주었다. 최명숙 회장은 그녀의 문학 스승인 것이다.
앞으로 시인 고명숙은

고명숙은 요즘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출근을 한다.
병원 청소 일을 벌써 2년 동안 하고 있다.
복지 일자리에서 떨어진 명숙을 구해 준 고마운 일자리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청소를 하느냐고 걱정하지만 청소 자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병원에서 배려해 주고 있어서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꿀잡(job)이라고 고명숙 시인은 환하게 웃었다.
현재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으로 시인으로서 더욱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청소 일이 고맙다고 하지만 요즘 장애예술인 고용이 미술과 음악 분야에서는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반면 문학은 기업에서 고용 사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한다.
문학이야말로 고용에 따른 사고나 작품 관리 등의 문제가 없기에 운영하기도 쉽고 고용 효과도 높기 때문에 고민숙 시인이 문학으로 취업이 되는 소식이 빨리 들리길 바란다.
고명숙
2009년 공동 시 낭송 음반「새로운 날의 詩作」
2011년 공동 동화집「작은 신들의 이야기 2」
2019년 공동 시 노래 음반「꽃과 별과 시」
2021년 공동 시집「내가 품은 계절의 진언」
2022년 개인 시집「우리 사랑」
2024년 공동 시 수필집「귀나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