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1

E美지 29호/음악

피아니스트가 본캐이고 싶은 양지우

 

 

 

소리에 반응하다 


2000년에 태어난 지우는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7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는데 그것이 지우에게 시각장애라는 남다른 삶의 조건을 지워주었다. 

지우는 빛을 본 적이 없기에 듣는 것에 흥미를 보였다. 소리가 나는 라디오와 TV를 좋아했다. 특히 음악이 나오면 집중도가 더욱 높았다.

어느 날 이모가 전자올겐 장난감을 사가지고 왔다.

‘지우야, 듣지만 말고 네가 소리를 만들어봐. 그러면 훨씬 재미있을 거야.’ 하면서 동요를 건반으로 쳐주었는데 그것을 듣고 지우가 바로 건반을 누르며 노래를 완성시켜 엄마와 이모를 놀라게 하였다.

지우는 수많은 소리 가운데 특히 연주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다.

요즘은 그것을 절대음감이라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를 잘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때가 지우 네 살이었다. 

지우는 여섯 살 때 한빛맹학교 유치원에 입학하였다.

학교 근처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자 지우가 멈춰섰다. 피아노 소리에 발길을 멈추는 지우 때문에 엄마는 학원도 없는데 매일 피아노 소리가 나는 것이 이상해서 알아보니 가정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지우가 문을 두드렸던 학원마다 거절을 했었는데 이곳 피아노 선생님은 ‘한번 가르쳐보겠다’고 하여 드디어 지우가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

 


피아노 스승을 만나다


장애인 맘카페에서 장애아동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겠다는 피아니스트 김지현 선생님 글을 보고 엄마는 지우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피아노전공 유학파 박사인데다 장애인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분이라 김지현 선생님을 만나고 피아노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지우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입시 준비를 시작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무려 8년 동안 김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다.
대학 진학을 음대로 정한 지우는 대학입시를 위해 새로운 스승과 입시 준비를 하였다. 

 

 

대학 생활은 지우의 풍선 


“저는 비장애인이랑 생활한 적이 없는데 대학에 오니 비장애인들을 너무 많이 만나야 되고 게다가 피아노를 잘 치는 애들을 한번에 만난 적이 없으니까, 실력적인 스트레스며 학업적인 스트레스가 엄청났어요. 대학에 와서 새로운 세상을 제대로 접하게 되었지요.”

대학생이 되고 풍선처럼 두둥실 뜨는 기분도 느꼈지만 언제 바람이 빠질지 모르는 풍선처럼 불안하기도 하였다.

지우는 또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사회에 나가면 나의 이 (연주)성과가 어느 정도로 지속될까? 음악은 학사 졸업이 초등학교 졸업 같은 취급을 당하더라구요. 박사분들이 많으시고 거의 유학파구. 대학만 졸업하면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햇병아리였어요.”

 


지우의 본캐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는 부캐? 


“나는 양지우인데 사람들은 내가 그냥 시각장애인이예요. 시각장애가 본캐릭터인 거예요. 나는 피아니스트가 캐릭터인데 시각장애인이 되면 그 무엇을 해도 시각장애가 본캐가 되는 거죠. 저도 어느 순간 ‘안녕하세요? 시각장애인 양지우구요’ 이렇게 말을 시작해요. 그래야 편해요. 나중에 시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상대가 ‘아 그러시구나’ 라며 난색을 표하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우는 자신이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는 사실을 최근에 다시 한번 더 확인했지만 피아니스트로 활동 기회가 너무 불규칙하여 연주 하나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양지우
2023년 상명대학교 음악학부 졸업
전국 청소년 뮤직콩쿠르 연말 특상
툴뮤직 피아노 부문 1위
2022년 희망을 들려주는 사람들 협연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