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1

E美지 30호/대중예술

새로운 길을 가는 모델 김종욱

 

다이어트로 생긴 자신감 


나는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움직임이 적어 살이 빠르게 붙는다. 스물한 살 때가 그랬다. 본래 살집이 있는 상태였지만 성인이 되어 술자리가 늘고 배달음식도 많이 먹으며 자연스레 몸무게가 불었다. 내가 살을 빼기 시작한 건 친구들에게 미안해서였다.

계단뿐인 술집을 출입할 때나 시설이 잘 안 갖춰진 MT장소를 갈 때는 친구 등에 업혀 갈 일이 많았는데, 나를 도와주던 친구들이 전보다 힘들어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2학년 여름방학 때 극단적 단식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배달음식에 쓰던 돈을 절약하니 30만 원이라는 목돈이 생겼다. 이 돈으로 뭘 할까 생각하다 쇼핑 플랫폼에서 이 옷 저 옷을 사봤다. 

어느 날 친한 동생이 패션쇼 티켓을 구해왔다. 그날 나는 패션 위크인 만큼 내가 꾸밀 수 있는 최대한으로 꾸미고 현장으로 향했다. 장르는 스트릿패션이었다.

쇼가 열리는 시간까지 플라자 밖에서 기다릴 때였다. 다른 모델들은 서서 포즈를 취하는데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 유일함이 주는 유니크함 때문이었을까, 그날 나를 촬영한 포토그래퍼가 열댓 명 이상은 될 것이다. 연이은 카메라 셔터음이 부담보다는 즐거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모델이나 해볼까 


모델과 포토그래퍼가 상호 무보수로 포트폴리오 작업을 많이 한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첫 스냅작업은 사진학과를 지망하는 한 고등학생 포토그래퍼와 함께였다.

인사동 거리에서 촬영한 스트릿패션 후드티의 협찬 스냅이었다. 다행히도 날씨가 화창했다. 작업했던 친구들과도 금방 친해졌고 화기애애하던 첫 작업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포토그래퍼 친구가 보내준 사진들을 내 SNS에 올리자 첫 작업인데도 반응이 성공적이었다.

무엇보다 협찬해준 패션 브랜드 대표님이 사진을 너무 만족스러워하셨다. 작업 사진이 한 장 두 장 쌓이며 내 SNS는 ‘장애인 모델’로서의 포트폴리오가 됐다.

 

 

배우도 해볼까

 

배우 제의도 왔다. 장애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모두의 영화〉중 한 에피소드 ‘씨네필Cinephile’의 주연 배우였다.

처음 받아본 촬영 스케줄과 대본,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모니터, 컷 편집을 잡아주는 슬레이트 등 모든 것이 신기했다. 


서울관광재단 유튜브 광고의 경우 휠체어 접근성이 좋은 배리어프리 서울 여행이 콘셉트였다. 계단 옆에 휠체어나 유모차가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가 항상 함께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도 어느 건물에나 마련되어 있다.


지난해 장애인문화예술축제에 올려진 한국장애예술인협회가 주관한 공연 <그 집 모자의 기도>에서 주인공 아들 역할을 하여 큰 인기를 모았다. 이 공연은 2023년 4월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또다시 공연하여 KBS 1TV를 통해 전국으로 생방송되기도 하였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모델이고 싶다 

 

요즘의 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모델도, 배우도, 방송인도 모두 매력적이지만 현재는 모델이라는 일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카메라 앞에 설 수 있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옷과 사진이라는 매체가 주는 매력이 나에겐 더 크게 다가온다.

아직은 나를 알려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모든 작업을 하는 편이다. 단, 단지 장애인이 필요해서 섭외하는 작업들은 거절하고 있다.

장애인이 필요한 작업이 아닌 김종욱이 필요한 작업을 하고 싶다.

 

 

김종욱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 광고 <문화매력국가>
연극 <그 집 모자의 기도> 출연
단편영화 <모두의 영화> 中 ‘씨네필’ 출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