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4

E美지 31호/미술

미술계의 다크호스 김경숙의 도전기

 

 

첫 번째 도전

 

주부로 지내던 김경숙은 집 근처 장애인복지관 프로그램에 수필강좌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신청을 하였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배우면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습작들이 단편소설로서 형식을 갖추기 시작할 무렵 김경숙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어 2015년 5·18문학상 공모전에 응모하였는데 뜻밖에도 대상을 받게 되었다. 소설을 배운 지 1년 만에 등단을 한 것이다. 

 

 

두 번째 도전 

 

 

집에서만 생활을 하다 보니 가족 외에는 접하는 사람이 없어 우울감이 생겼다. 그녀는 동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민화교실에 2023년 수강 신청을 하였다. 민화는 이미 만들어진 그림 본에 색을 입히는 채색과정인데 그녀는 창작민화를 하고 싶었다. 그림을 창작하여 민화기법으로 채색을 하였다. 그림에 푹 빠진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평가받기 위해 인터넷에서 공모전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장애인예술계에서는 가장 큰 상을 잇달아 받았다. 그림을 시작한 지 4개월만에 수상을 하여 그녀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집을 떠나는 도전 

 

태어난 지 100일이 되면 백일잔치를 하는데 1967년, 그때 경숙은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마비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홉 살에 전북 순창에 있는 강경마을로 이사를 갔다. 그 당시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로 생활을 하였다.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재산을 몽땅 잃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해 아버지도 잃게 되었다. 
열두 살에 집을 떠나 서울 봉천동에 있는 삼육재활학교에 갔다.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다시 암울했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 도전하다 

 

어느 날 장애인취업박람회 소식을 듣고 이력서를 들고 잠실로 갔다.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학벌이 있어야 정규직으로 전환도 되고, 승진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2009년, 대학에 도전하였다. 마침 사이버대학이 있어 등하교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결혼도 도전이다 

 

 

삼육재활학교 시절, 조선대학교 미대를 다니다 휴학계를 내고 삼육재활원에서 금은세공기술을 배우던 원생이 있었다. 그 당시 그는 대학물을 먹은 엘리트였다. 그는 수료 후 재활원을 떠나며 학교로 복학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짧은 인연이 있었던 그를 10년 후 우연히 정말 뜻밖에 다시 만났다. 그들은 연인이 되었고, 10년을 친구처럼 지내다가 부부가 되었다.
그녀는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열중하였다. 그렇게 힘들게 키운 아들이 벌써 스물한 살이 되었다. 

 

 

장애예술인의 길잡이 

 

2022년, 그녀는 그림에 관심 있는 중증여성장애인모임을 만들었다. 모임 이름은‘화화'로  그림으로 말한다는 뜻이다. 인천 계양구청 평생학습실 구청에서 우수동아리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였다. 재능기부 강사가 없어 임시로 김경숙 그녀가 그림 지도를 하였다. 
김경숙은 지금도 재택근무를 한다. 문서정리의 단순 작업이라 보수는 적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