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7

E美지 32호/음악

독일이 인정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

 

 

 

 

장애가 이어준 음악 


김종훈은 1968년, 2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천성 백내장과 녹내장으로 인한 고도약시였다.

현재 왼쪽 눈은 완전 실명, 오른쪽은 사물의 형체만 알아볼 정도인데 진행성이라서 점점 잔존 시력이 사라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 악기를 접했는데 어깨에 올려놓고 볼에 악기를 붙이고 연주를 하는 방식이 안정감을 주었다. 그래서 5학년 때 레슨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바이올린 연주자의 꿈을 키웠다. 

대학은 무사히 입학을 했지만 1991년 대학을 졸업한 후 그의 앞에 펼쳐진 현실은 막막하기만 했다. 보통 연주자들은 오케스트라에 취업을 하지만 시각장애가 있는 김종훈은 그것이 어려웠다.

음악의 한계가 느껴져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학창시절 부산콩쿠르에서 1위를 하여 고무되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1992년 동아콩쿠르에 도전하여 3위를 차지하였다. 

 

 

 

 

독일 유학 생활 

 

친구가 운영하는 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독일에 살고 있던 대학 동기의 도움으로 1994년 독일 유학을 가게 되었다.

유학 준비를 한참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큰 고비가 있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유학 중 현악4중주를 결성하여 학교에서는 물론 크고 작은 행사에서 연주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다양한 무대를 경험하며 자신감이 생겼을 무렵, 제2 바이올린을 담당하는 여학생과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소리 없이 그의 눈이 되어주었다.

유학생활에서 고생도 많았지만 결혼을 약속한 피앙세도 얻었고, 김종훈은 베를린 국립음대를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뉴욕 카네기홀, 유엔본부, 독일 대통령궁 초청 연주,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협연 등 다양한 연주 활동을 하였고, 독일에서 각 분야의 유망주에게 주는 상인 악셀 스프링거상(Axel Springer Preis)을 수상하면서 7년간의 독일생활을 마무리하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종훈의 바람  


2000년 귀국한 후 김종훈은 바로 결혼을 했다.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부인이 해주었다.

함께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부인은 음표를 읽어주는 것 외에 그의 연주 활동 전반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모교 출강을 시작으로 숭실대학교에서는 현악합주 과목도 강의할 수 있었다. 

레슨과 공연 등 모든 그의 일정을 관리해주는 부인 덕분에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시각장애 음악인들로만 구성된 ‘한빛예술단’ 음악감독으로 장애예술인들과 함께 하면서 바이올리니스트로 실내악 연주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시력 저하가 진행되고 있어 언제 어둠에 갇히게 될지 모르지만 두렵지 않다. 지금도 눈이 아닌 온몸이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을 하며 시각장애로 정교한 기교를 구사하지 못하여 답답할 때 교회에서 기도를 하며 음악은 악기로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연주를 해야 연주자의 감정이 전달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듯이 그에게 바이올린이 있는 한 시력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생관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