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7

E美지 32호/미술

오티즘 감각으로 창작하는 화가 이규재

 

 

 

 

오티즘 이해하기

 

“자폐성 발달장애입니다.”
다른 엄마들은 진단을 받으면 특수교육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러 다니기 바쁘다던데 엄마는 집 근처 복지관을 들락거리며 복지관에 다니는 성인자폐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궁금했는지 모르겠지만 규재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곧바로 복지관으로 가서 현관 입구 의자에 앉아 성인이 된 자폐인 살펴보기를 3주 정도 했다. 그러고 나니 조금, 아주 조금 자폐인의 성인기에 대해 이해가 되었고 아들 규재에 대한 교육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자폐아 교육은 치밀하게 


규재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특수학급 학생이 되고 통합교육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통합교육의 현실은 제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사회 인식 등이 많이 열악한 상태인데 하물며 20여 년 전인 그때는 어려운 점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 힘든 환경 속에서 전투하듯 온 힘을 쏟아 특수학급을 이끌어가던 특수교사 선생님들의 섬세한 지도로 규재는 조금씩 학교에 적응해 갔다. 
규재는 일대일 개별수업은 가능했지만 원반에서 이루어지는 학급수업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수업 중간에 벌떡 일어나 교실 안을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착석 훈련을 시키려고 생각해 낸 방법은 수업마다 종합장을 마련해주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듣고 생각나는 그림을 그리라는 미션을 준 것이다. 

 

 

 

 

규재가 좋아하는 그림그리기 


초등학교 6년은 종합장과 함께 규재 스스로가 자신이 그림을 그리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한 감정학습 습득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런 규재의 학교생활을 눈여겨보던 특수학급 선생님으로부터 그림이 독특하고 예쁘니 미술공모전에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아 참여하였다.
이것이 규재 그림이 세상으로 나간 첫 번째 나들이였다. 유럽 EKF′s Autistic Children′s Drawing Contest에서 대한민국 학생으로 입상하여 인사동 쌈지길에서 기념전시가 열렸다. 5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규재가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걸린 그림 앞에서 어리둥절하여 긴장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중2병도 미술로 치유 


중학생이 되고 중2병이라는 사춘기가 왔을 때, 규재 스스로가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는 현실을 느끼기 시작하며‘이규재는 꼴찌다. 국어도 꼴찌, 수학도 꼴찌, 달리기는 넘어지고 또 꼴찌’라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잣말로 중얼중얼 반복했다. 
“그런데 이규재는 화가다, 상 받았지, 전시했지… 이규재는 작가님이지.” 
규재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는 자존감과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규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문화재단의 12기 입주작가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규재와 엄마는 함께 성장 중  


현재 규재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서울시향) 소속의 미술작가로 활동 중인데 얼마 전 규재가 작가로서 작지만 기쁜 결실이 있었다. <동그라미 별>이라는 동화시집을 출간했는데 새로운 창작예술의 시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강기화 동화시인이 규재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짧은 시로 창작을 한 것이다. 
부모가 곁에 있을 때처럼 그림 활동이 부모 사후에도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림이라는 특기보다 더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꾸려가며 누릴 수 있는 주도적 일상생활 자립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도서관에서 보조사서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문화센터에서 볼링이나 배드민턴 동호회에도 참여하도록 하였다. 물론 활동지원사와 함께 하는 지역사회 활동이지만 주변 분들의 응원 덕분에 모두가 함께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