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2
E美지 34호/대중예술
휠체어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성을 가진 나, 휠체어무용수 박정호 ‘I am That’ 으로 안무 데뷔
생명줄을 간신히 잡고
이미 아들 둘이 있는 상태에서 셋째를 임신한 엄마는 죽음을 택하였지만, 일찍 발견돼 병원으로 실려가 엄마도 깨어나고 아기도 무사했다.
1973년에 셋째로 태어난 아기도 아들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약물 중독으로 몹시 허약했다. 결국 6세에 척수종양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하였는데 결과는 하반신마비였다.
8세가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등하교가 어려워 성세재활학교로 전학을 갔다. 말이 전학이지 집을 떠나 성세재활원에 입소한 것이다.
아, 나도 쓸모 있는 존재이구나
그곳에는 다양한 장애 유형의 친구들이 있었다. 집에 있을 때에는 혼자 세상의 모든 불행을 다 짊어진 듯 우울했지만 이곳에 오니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가 달라졌다. 더욱 밝아지고 능동적으로 바뀌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자신감으로 그는 친구들을 돌봐주게 되었다.
그는 특수학교 시절의 추억이 많다. 친구들과 바닥에 앉아 기어다니며 야구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이것저것을 함께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서울로 상경
성세재활학교는 중학교 과정밖에 없기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다른 지역으로 가야 했다. 그는 서울에 가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삼육학교를 택했다.
삼육학교는 성세학교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자신과 비슷한 장애유형을 가진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드디어 경쟁자들이 생긴 것이다.
그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박정호는 육상, 마라톤, 농구 종목의 선수 경력과 함께 장애인스포츠 코치와 감독으로도 활동을 했다.
예술 세계로 오다
예술에 발을 디딘 것은 2011년 휠체어무용의 전설 김용우를 만나고부터이다. 김용우가 박정우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여 k휠댄스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됐다.
박정호는 몸무게 42kg으로 남자로서는 작은 몸집이지만 몸이 아주 가볍다. 다리 대신 팔로 모든 생활을 해서 팔근육이 아주 탄탄히 발달되었다. 그래서 휠체어로 다양한 동작을 연기하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에 한국대표로‘아이덴티티’라는 작품으로 솔로 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K휠댄스프로젝트를 통해‘방황하는 몸’,‘共&鳴’에 출연하였고, 2018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비엔나현대무용콩쿠르 파라(장애인) 부문에 K휠댄스프로젝트 팀으로 참여하는 등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다.
I am That
박정호 이름을 걸고 첫 개인 창작무용 공연을 했다. 공연 제목‘I am That’은 휠체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것과 나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맺음을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기존 사회의 경계와 틀을 부수고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무용 공연이다.
‘I am That’을 안무하고 연기하며 그는 무용전문가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하였다.
박정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사
K휠댄스프로젝트 객원 단원
장애인 인식개선 특별 강사
2024 박정호 창작무용 발표 ‘I am That’(기획/안무/출연)
2024 열린음악회(K-wheel dance project팀)
2023 K휠댄스프로젝트 ‘共&鳴’ 출연
2022 K휠댄스프로젝트 ‘방황하는 몸’ 출연
2018 오스트리아 비엔나 현대무용 콩쿠르 파라 부문 K휠댄스프로젝트 참여
2017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한국대표 ‘Identity’ 솔로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