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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
삽시간의 황홀 그 너머에
실레마을 김유정의 사람을 만나다
실레마을 김유정의 사람을 만나다

금병산 아래 실레마을
옴팍한 떡시루 같은 마을이 앉아 있다
이 마을에는 누구네 사연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살았다
열아홉 살 들병이가 술을 메고 겨울 산을 넘어와
잠시 머물다 가는 마을 저녁은
떠도는 나그네 여정이 담긴 술병을 풀어놓으니
그네들의 선한 눈매로 술보다 따뜻했다
장수골 가난한 부부의 아기장수 전설
세월 속에서 날개 잘려 죽은 아이의 슬픔이 그대로다
나무와 꽃, 하늘도 고개를 숙이고서
실레마을 공소 신부님의 소천 기도와
조금 멀리 덕두원 봉덕사 스님의 아미타불 염불을 들었다
누군가를 꼬시며 웃던 점순이의
동백숲 동백은 강원도 아리랑
소양강 처녀의 노래가 되어 남았다
덕돌이가 몰래 장가들던 신바람 길
복만이 소 장수에게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은 한가롭고
이쁜이가 시골 도련님을 기다리던 수작골길에는
노란 동백꽃잎이 흩날렸다
우리 할매가 산신령길 산신각에서 감주 한 사발 떠 놓고
눈물로 마을의 안녕을 빌었고
응칠이가 송이 따던 송림길과
응오가 자기 논에 벼 훔치던 수아길
그리고 자기 솥 훔치던 근식이의 한숨길에서
옛 시절의 흔적들이 아련하였다
맹공이 울 때 들병이들에게
서른넷인데두 총각 이라고
소개하던 덕만은 어디로 갔을까
느티나무가 있는 금병의숙에서 아이들과 나온
김유정이 봉필 영감의 데릴사위 최 씨에게
잘 있었나 인사를 했다
주막에 들러 코다리찌개에 막걸리 한 사발에
얼굴 붉어지더니 막걸릿잔을 내밀며 웃었다
김유정의 사람들이 흙 위에 쌓여
다져진 이야기 길의 길목에서 걸어왔다
비로소 소설이 글 속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았다
영등물 도대불 전망대에서

내가 아직 걷지 못한
여름의 한 자락을
바람은 미리 와 말했다
지나간 계절은 흔적도 없고
그 사이에서 멈칫멈칫 서 있는 동안
시간은 내 허락도 없이 흘러
바다는 여름을 품었지만
나는 아직 어제에 기댄 채 서 있다
구좌읍 김녕리,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마을
아무도 없는 바다의 마음 하나를 안고
남흘동 정류소까지 걸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무상의 시절로 지나갔음을 본다
수확의 흔적만 남은 검은 돌담밭에서
나만이 계절의 문을 잠그고
가버린 시간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녹음을 입은 남흘동당 팽나무를 지나
도대불 전망대에 올라
김녕 바다 영등물 바다를 본다
바람이 불고 물결 위의 햇살은 고요하다
파도는 밀려와 내 안의 허상들을 쓸어가고
바다에서 올라온 미륵 같은 존재
서문하르방당에서 오랜 세월을
묻은 얼굴로 섰다
조금 멀리 있는 시간의 자리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투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