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9

삽시간의 황홀 그 너머에

삽시간의 황홀 그 너머의 당신에게

 

 

삽시간의 황홀 그 너머의 당신에게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서

 

 

당신은

중간산에 먼저 마음을 놓고

제주 바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낮설기만 했던 섬의 풍경은

그대 앞에서 삽시간의 황홀로 섰습니다

 

렌즈 너머의 억새는 바람의 서사였고

오름은 그대가 걷던 들판의 기도였습니다

 

당신의 흑백사진 속 바다는

아직 파도가 치고

디뫼 자락의 동자석은

여전히 말을 걸었습니다

 

사라지는 것들 위에서 보았던 풍경을

당신은 찰나의 황홀로 담았고

그 찰나에 존재하던 노란 유채꽃, 삼나무 숲,

황토의 억새, 흑백의 눈밭은

사라지지 않을 유산이 되었습니다

 

텅 빈 들녘의 바람 같은 존재 당신은

무채색의 아름다움

소리 없는 저항이었습니다

 

당신이 죽어서도 사는

갤러리 두모악은

벽 없는 찰나의 기억으로

문을 닫지 않습니다

 

제주 어느 바람 부는 언덕에서

당신 김영갑은 우리를 부릅니다

우리가 당신을 기억합니다

 
 
 
 
 

대정 가는 길

- 추사 김정희에 대한 상념

 

 

절반이 검은 자갈밭길

사람도 말도 더뎌라

 

모란 빛 단풍 숲도 스쳐 가고

숨 가쁜 여정 서남쪽 끝

대정의 바람이 차갑다

 

가을 소식은 아직 멀었건만

그리움이 앞서간다

 

남문지 못가에 서니

입석에 새겨진 허한 이방인의 얼굴

추사 완당의 담담한 미소가 보여

 

삿갓 쓰고 나막신 신은 유배객이

천천히 걸으라 하는 음성이 나직하다